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들 한다. 그러나 제약·바이오산업에서 실패의 대가는 유독 무겁다. 수년간 개발한 신약 후보물질이 임상시험에서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하거나 기술수출 계약이 종료됐다는 소식만으로도 주가는 크게 흔들린다. 대기업은 막대한 자본과 여러 사업을 바탕으로 다시 도전할 여력이 있지만, 작은 바이오벤처에는 한 번의 실패가 회사의 존속을 결정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어느 산업 현장을 가도 빠지지 않는 화제가 있다. 인공지능(AI)과 AI 전환(AX)이다.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도 AI는 신약 후보물질 발굴과 독성 예측을 넘어 임상시험 설계까지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연구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실패 가능성을 낮출 기술로 기대를 모은다. 그러나 AI가 발전하더라도 신약개발의 실패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AI 신약개발 기업 버지 지노믹스는 AI로 발굴한 치료 표적을 활용해 루게릭병 치료 후보물질 'VRG50635'를 개발했다. 하지만 지난해 임상시험에서 기대한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고, 이후 사업을 전환하며 직원 약 90%를 감축했다.


그렇다고 연구가 모두 수포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회사는 '버지 랩스'로 이름을 바꾸고 축적한 환자 및 임상 데이터를 활용해 치료제에 적합한 환자를 찾아내는 AI 모델 개발에 나섰다. 실패한 연구가 새로운 사업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한미약품 역시 2020년 사노피로부터 개발 권리를 반환받은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연구를 이어간 끝에 지난달 비만치료제 '에페'로 국내 품목허가를 받았다.


두 사례는 상황은 다르지만, 한 차례 좌절을 겪더라도 연구를 이어간다면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자금 부족으로 신약개발 관련 연구과제를 중단하거나 늘어난 임상 비용 부담으로 시험을 조기 종료한 사례가 있다. 연구의 가능성이 남아 있더라도 이를 이어갈 자금과 시간이 없다면 다음 도전은 어려워진다.


업계에서는 바이오 분야에 대한 지원이 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이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K-제약바이오 프론티어기업 육성 방안'은 반가운 움직임이다. 정부는 2027년부터 매년 50개씩, 2030년까지 유망 제약·바이오 중소벤처기업 200개를 육성하기로 했다.


선정 기업에는 연구개발부터 임상과 사업화까지 기본 2년간 지원하고 성과가 우수한 기업에는 3년간 추가 지원한다. 신약개발은 연구성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개별 연구과제 중심의 지원을 넘어 최대 5년간 개발 단계에 맞춰 지원을 연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막대한 신약개발 비용을 고려할 때 지원 규모가 충분한지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특히 주목한 것은 실패 이후의 연구를 바라보는 정책의 변화다. 정부는 연구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의미 있는 성과가 있다면 후속 연구로 연계할 수 있도록 국가연구개발 제도를 개편하고 있다. 신약개발 실패 시 자금 상환 부담을 일부 덜어주는 '성공불융자' 제도 도입도 검토 중이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발굴하는 것뿐 아니라 실패한 연구에 남은 가치도 살펴보겠다는 방향은 신약개발의 특성과 맞닿아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정책이 실제 바이오벤처의 재도전으로 이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AI가 신약개발의 실패 가능성을 줄여가는 만큼, 실패 이후에도 연구를 이어갈 기회 역시 넓어지기를 바란다. 한 번의 실패가 기업의 마지막 도전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결국 그 도전의 끝에는 새로운 치료제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자의 눈] AI로 신약 찾는 시대, 실패한 연구에도  다음 이 있으려면이연우 더밸류뉴스 산업부 기자. [사진=더밸류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