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시장 커지고 운용 경쟁 붙는다…기금형 도입·사외적립 의무화
2028년 100인 이상부터 단계 적용…2030년 전 사업장으로 확대
정부가 퇴직급여 사외적립을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하고, 제3자가 적립금을 운용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한다. 퇴직급여 체불 위험을 줄이는 동시에 가입자의 운용 선택지를 넓히고, 퇴직연금 시장에서 사업자 간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구상이다.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는 29일 노사정 공동선언의 후속 조치로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는 퇴직연금 기능강화 방안을 29일 발표했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AI 생성]
◆ 사업장 규모별 사외적립 의무화…시장 저변 확대
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1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28년 100인 이상 사업장, 2029년 10~99인 사업장, 2030년 10인 미만 사업장 순으로 퇴직급여 사외적립을 의무화할 계획이다. 의무는 각 단계 시행 이후 발생하는 계속근로기간부터 적용된다.
사외적립은 퇴직급여를 사업장 외부에 적립하는 방식이다. 사업장 폐업이나 경영 악화로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위험을 줄이려는 취지로, 2025년 임금체불액 중 퇴직금은 8229억원으로 전체의 41.1%를 차지했다.
정부는 의무화에 따른 중소기업 부담을 덜기 위해 조기 도입 사업장 적립금 매칭 지원과 신규 도입 사업장 융자 비용 보전 사업을 추진한다. 2027년 정부안에는 각각 60억원과 62억원이 반영됐다.
30인 미만 사업장이 의무화 시점보다 먼저 퇴직연금을 도입하면 최저임금의 130% 미만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 부담금 중 10%를 지원하고, 50인 미만 신규 도입 사업장에는 경영자금 융자 시 대출금리의 2%포인트를 보전하는 방안이다.
◆ 연금 수령 유도…중도인출 대신 담보대출 검토
정부는 퇴직급여를 장기 적립해 노후자금으로 활용하도록 연금 수령을 유도하는 방안도 내놨다. 주택 구입이나 임차보증금 마련 등에 적립금을 중도인출하는 대신 필요한 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담보대출 상품 출시를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퇴직급여를 받을 때 연금과 일시금의 기대수익·수령액을 비교한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고, 일시금 수령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연금으로 지급하는 방식도 검토한다. 현재는 퇴직급여를 받을 때 일시금과 연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최 본부장은 연금 수령을 의무화하기보다 다양한 상품과 운용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는 “실질적인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서는 연금수령을 의무화하는 방식보다는 다양한 연금상품을 공급해야 한다"며 "가입자의 자산이 자본시장에 장기간 머물며 운용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제도와 실무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 기금형 도입…계약형과 경쟁·공존
기금형 퇴직연금은 전문성을 갖춘 제3자 수탁법인이 적립금을 대신 운용하고, 운용 손익은 가입자에게 귀속되는 제도다. 적용 대상은 DC(확정기여형)와 IRP(개인형퇴직연금)이며, 사업장 안에서 계약형과 기금형을 함께 두거나 여러 기금형을 설정할 수 있다.
수탁법인은 금융기관 개방형, 연합형, 공공기관 개방형으로 나뉜다. 노사·전문가·정부 등이 참여하는 인가위원회 심의를 거쳐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하며, 예비인가와 본인가의 2단계 절차를 밟는다.
가입자 보호를 위해 수탁법인에는 가입자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책임을 부여한다. 운용·이해상충 관리·설명의무 위반 등 일부 영역에서는 수탁법인이 의무 위반과 손실 간 인과관계 또는 고의·과실이 없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며, 운영위험준비금 적립과 외부기관을 통한 교차 검증도 추진한다.
최 본부장은 기금형 도입이 기존 계약형 시장에도 자극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그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이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기금형 도입에 따른 경쟁 심화는 기존 계약형 퇴직연금 시장에도 긍정적인 자극이 될 수 있고, 증권사 입장에서도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라고 주장했다.
◆ IRP 투자 한도 완화 추진…DC형은 후속 과제
정부는 계약형 퇴직연금 제도도 개선한다. 현재 70%인 IRP의 위험자산 투자 한도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DC형과 IRP의 투자 가능 상품에는 종합투자계좌(IMA)와 발행어음을 추가할 계획이다. 디폴트옵션은 수익률과 위험조정성과를 중심으로 평가해 부실 상품을 정리하고, DB형 사업장의 적립금 운용 현황과 성과도 단계적으로 공시할 예정이다.
다만 DC형의 위험자산 투자 한도 확대 여부는 추후 검토 과제로 남았다. 최 본부장은 “퇴직연금은 DC형의 적립 단계와 IRP의 인출 단계를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개편에서 IRP의 위험자산 투자 한도 완화와 투자상품 확대가 추진되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DC형의 위험자산 투자 한도 확대 여부가 추후 검토 과제로 남았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장기적인 노후자산 형성이라는 취지에서 DC형에 대해서도 관련 제도 개선이 조속히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사업자 평가체계 개편과 관련해서는 “가입자들이 운용성과뿐 아니라 서비스 인프라와 교육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퇴직연금 사업자를 선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라고 밝혔다.
◆ 경총, 중소·영세 사업장 여건 고려 필요
다만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사외적립 의무화와 관련해 “중소·영세 사업장의 재정 여건과 제도 운영 부담을 충분히 고려하여 좀 더 세심한 단계적 시행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금형 퇴직연금에 대해서는 “수익률 제고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을 조성하기보다는 투자위험 관리와 가입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공단의 사업 참여도 “공적연금과 사적연금 간 역할 구분을 모호하게 하고, 퇴직연금시장의 공정경쟁과 건전한 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며 신중한 검토를 요구했다.
퇴직연금 적립금은 2025년 말 501조4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6.1% 늘었지만, 2025년 수령 계좌 기준 일시금 비중은 83.5%에 달해 적립금을 노후소득으로 연결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이번 제도 개편이 퇴직연금 시장의 저변을 넓히고 운용 경쟁을 촉진할 수 있지만, 실제 성과는 중소·영세 사업장의 부담을 덜고 가입자 보호와 투자위험 관리 장치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마련하느냐에 달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