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가 신임 케빈 워시 의장 취임 후 첫 통화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다만 향후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는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깜짝 신호를 보냈다. 전문가들은 최근 중동 사태 등으로 촉발된 공급 충격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 연준의 이 같은 판단을 이끌어냈다고 분석했다.  

 

연준은 17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성명을 통해 기준금리(연방기금금리) 목표 범위를 현행 연 3.50∼3.75%로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위원 12명의 만장일치 표결 결과다. 연준은 지난해 12월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한 뒤, 올해 들어 네 차례 연속 동결 기조를 이어갔다.

 

금리 인하를 압박해 온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기대와 달리, ‘워시 체제’의 첫 발은 인플레이션 방어에 무게를 둔 매파적 색채가 짙었다. 연준은 이날 정책결정문에서 그동안 유지해 왔던 통화정책 방향 선제 안내 문구 중 ‘완화 편향(easing bias)’ 표현을 전격 삭제하며 정책 기조 변화를 공식화했다.


美 연준, 기준금리 3.50~3.75% 동결 발표…‘점도표’는 연내 금리 인상 깜짝 시사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AI 생성]

◆ 중동발 에너지 충격 심화…인플레이션 전망치 상향

 

연준이 금리를 동결하면서도 긴축의 칼날을 다듬은 배경에는 중동 분쟁에 따른 유가 및 원자재 가격 급등이 자리 잡고 있다. 연준은 성명문에서 “물가 상승세(인플레이션)는 에너지 등의 가격 상승을 초래한 공급 충격 영향이 반영된 결과로, 목표치인 2%와 비교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위원회는 물가 안정을 실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이란 간의 60일 양해각서(MOU) 타결 임박 소식에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배럴당 75달러 안팎으로 내리며 직전 유가는 하락세를 보였으나, 연준의 시선은 이미 지표에 박힌 물가와 그 전이 위험에 맞춰져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가장 큰 충격은 업데이트된 ‘경제전망요약(SEP)’에서 나왔다. 연준은 올해 개인소비지출(PCE)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지난 3월의 2.7%에서 3.6%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2027년 전망치 역시 2.2%에서 2.3%로 올렸다.

 

업계에서는 에너지 가격 상승 압력이 가계와 기업의 기초 체력인 ‘근원 물가’로 번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스러운 대목으로 지목하고 있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올해 근원 PCE 인플레이션 전망치는 기존 2.7%에서 3.3%로, 내년 전망치는 2.2%에서 2.5%로 일제히 올라갔다.


최근 미국 근원 PCE 물가 상승분의 30%가량이 AI 관련 분야에서 유입되는 등 공급측 요인이 작용한 가운데, 미 중앙은행이 현 상황을 단기적인 에너지 충격에 그치지 않고 광범위한 물가 전이가 시작된 위험 국면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美 연준, 기준금리 3.50~3.75% 동결 발표…‘점도표’는 연내 금리 인상 깜짝 시사미국 중앙은행 기준금리 추이. [자료=네이버]

◆ 뒤집힌 점도표…달러 강세에 원화 가치 직격탄

 

향후 금리 경로를 보여주는 ‘점도표(Dot Plot)’의 궤적도 3개월 만에 완전히 뒤집혔다. 이번 점도표에 참여한 위원 18명(워시 의장 제외) 중 절반인 9명이 연내 최소 한 차례 이상의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올해 말 기준금리 전망치 중간값은 지난 3월의 3.4%에서 3.8%로 치솟았다. 3월만 해도 금리 인상을 점친 위원이 단 한 명도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매파적 반전이다. 다만 워시 의장은 본인의 금리 전망을 제출하지 않았으며, 포워드 가이던스를 사실상 폐기하며 향후 연준을 ‘예고 중심’에서 ‘데이터 중심’의 의사결정 체계로 전환하겠다는 뜻을 공고히 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추가 긴축 가능성을 시사하자 국내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은 즉각 요동쳤다고 진단했다. 정책금리에 민감한 미 국채 2년물 금리가 장중 4.2%선에 육박하며 급등했고, 달러인덱스 역시 100.089선까지 전일 대비 0.549%포인트 큰 폭으로 뛰었다. 이에 외국의 국내 증시 순매도 전환과 강달러 부담이 맞물리며, 원화 가치에 강력한 약세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판단이다. 

 

시장에서는 5월 소매판매 호조 등 미국 경제 지표가 견조한 흐름을 지속하며, 당분간 달러 강세 기조 추종에 따른 환율 상방 압력이 우세할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반기 말을 앞두고 수출 및 중공업체의 조기 고점매도 물량이 대기하고 있으며 외환당국의 속도 조절을 위한 미세조정 경계감이 살아있어, 추가적인 과도한 폭등세는 다소 제어될 것으로 관측된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스트래티지스트는 "워시 의장은 물가 안정 의지와 연준 운용 방식 전면 재편을 핵심 메시지로 제시하며, 포워드 가이던스를 사실상 폐기해 추가 금리 인상 우려를 자극했다"며 "시장이 금리 방향성을 점진적으론 선반영하는 것이 아닌 매 회의 결과에 즉각 반응하는 구조로 전환되며 향후 FOMC 이벤트마다 변동성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