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임상의 AI 안목] ②콘텐츠 제작비가 사라지는 시대, 무엇이 돈이 되는가
[류임상 칼럼니스트] 인공지능으로 음악을 만들다 보면 종종 묘한 기분이 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악 한 곡을 완성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다. 작곡과 편곡을 거쳐 연주와 녹음, 믹싱까지 마쳐야 비로소 하나의 음원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제는 몇 줄의 문장만 입력해도 제법 완성도 높은 음악을 만들 수 있다. 때로는 전문적인 제작 환경에서 만든 음악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처럼 음악 제작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새로운 문제가 떠오른다. 누구나 비슷한 수준의 음악을 손쉽게 만들 수 있다면, 그 음악은 과연 얼마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제작이 쉬워진 만큼 음악을 판매하고 수익을 내기는 오히려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콘텐츠 산업에 가져온 변화는 단순히 창작 도구의 발전에 그치지 않는다. 콘텐츠를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이면서, 오랫동안 산업의 경제적 가치를 뒷받침해 온 생산비용과 희소성의 관계 자체를 흔들고 있다.
◆ 생산비용의 하락, 가치의 하락인가
경제학에서 희소성은 가치를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어떤 재화를 생산하는 데 많은 시간과 자본, 전문 기술이 필요하다면 이를 공급할 수 있는 사람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콘텐츠 산업 역시 오랫동안 이러한 제약을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음악 한 곡을 만들려면 작곡가와 연주자, 녹음실과 엔지니어가 필요했다. 영상 한 편을 제작하는 데도 촬영 장비와 제작진, 후반작업을 위한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이러한 생산 조건은 산업의 진입 장벽이었고, 기존 제작사들이 경쟁력을 유지하는 기반이기도 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이러한 구조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프랑스의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디저(Deezer)는 2026년 7월, 같은 해 6월 기준 하루 평균 약 9만 곡의 AI 생성 음악이 업로드됐으며, 업로드가 가장 많았던 날에는 신규 업로드의 절반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반면 2026년 4월 발표 당시 AI 생성 음악의 재생 비중은 전체의 약 1~3% 수준이었다. 플랫폼이 AI 생성 음악을 추천 목록에서 제외한 영향도 있지만,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해서 소비까지 그만큼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물론 제작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 서비스 이용료는 물론 결과물의 수정과 품질 관리, 저작권 검토, 유통 등에 드는 비용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콘텐츠를 처음 생산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크게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생산비용이 줄어든다고 해서 기업의 이익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경쟁 기업들도 같은 기술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더 저렴하게 만들 수 있다면, 비용 절감으로 얻은 이익은 가격 경쟁과 공급 확대 과정에서 희석될 수 있다.
싸게 만드는 능력과 돈을 버는 능력은 서로 다른 문제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AI 생성]
◆ 콘텐츠가 넘쳐날 때, 무엇이 희소해지는가
1971년 경제학자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정보가 풍부해질수록 그것을 소비하는 인간의 주의력은 오히려 희소해진다는 통찰을 남겼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의 통찰은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의 콘텐츠 시장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하루에도 수만 곡의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지지만, 사람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나지 않는다. 영상 제작비가 낮아져 더 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와도 한 사람이 하루 동안 시청할 수 있는 시간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콘텐츠 공급은 급격히 증가하지만, 이를 소비할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다. 생산의 희소성이 줄어드는 대신 관심의 희소성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콘텐츠 기업의 경쟁력에도 새로운 기준을 요구한다. 과거에는 무엇을 얼마나 잘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수많은 콘텐츠 가운데 어떻게 발견되고, 선택되며, 기억될 수 있는지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플랫폼의 영향력은 오히려 강화될 수 있다. 누구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지만, 누구나 소비자의 화면에 자신의 작품을 노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음악이 추천되고 어떤 영상이 먼저 제시되는지를 결정하는 알고리즘은 새로운 형태의 시장 진입 장벽이 된다.
동시에 창작자와 기업에는 새로운 기회도 열린다. 거대한 제작 설비 없이도 세계 시장에 접근할 수 있고,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실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을 지속적인 수익으로 연결하려면 생산 능력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바로 취향과 신뢰, 일관된 세계관, 그리고 사람들이 반복해서 찾고 싶어 하는 이유다. 콘텐츠는 쉽게 만들 수 있어도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브랜드와 청중의 관계까지 단번에 만들어낼 수는 없다. 이러한 관계는 콘텐츠 기업의 중요한 자산이자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지난 글에서 나는 인공지능이 가져온 변화를 '창조 경험의 민주화'라고 표현했다. 창작의 기회가 소수의 전문가를 넘어 더 많은 사람에게 열리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창작의 민주화가 곧 수익의 민주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해서 모두가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생성형 인공지능이 콘텐츠 산업에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기술이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는가에 관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생산비용이 낮아질수록 우리는 무엇을 자산으로 축적해야 하는가? 누구나 비슷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 때, 소비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는가?
창작의 민주화가 시작된 지금, 콘텐츠의 경제적 가치는 만드는 능력보다 선택받는 이유에 의해 결정될지도 모른다.
류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