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기 칼럼] '스마트 공장'에 AI가 들어서지 못하는 이유
AI 대전환의 그늘… 대기업 AX 훈풍 뒤 갇힌 中企 현장 민낯
글로벌 산업계가 인공지능(AI) 기반의 대전환(AX) 구호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삼성전자는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 '가우스'를 반도체 및 가전 제조 공정에 이식하고 있으며, SK그룹과 LG그룹은 각 계열사 데이터를 통합한 거대언어모델(LLM) 및 산업용 AI 에이전트를 경쟁적으로 구축 중이다. 대기업군을 중심으로 한 수조 원 규모의 AI 전용 데이터센터(AIDC) 투자 경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와 언론이 AI 전환의 기대효과와 대기업 중심의 대규모 투자 성과를 주로 조명하면서, 중소·중견 제조업의 '현장 AI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제조업 저변에서는 AI 도입의 구체적 방법론을 찾지 못해 혼란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미지=더밸류뉴스 | AI 생성]
정부 정책 역시 대기업의 이 같은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AI 자율제조 100대 선도프로젝트' 및 '산업 AX 발전전략'을 잇달아 발표하며, 제조업 현장에 AI를 접목하는 기업에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전용 펀드 조성을 약속하고 나섰다. 국가 차원의 AI 생태계를 빠르게 완성해 세계 주요 제조업 강국의 위상을 고수하겠다는 정부의 포부다.
하지만 이 같은 화려한 정책 구호와 대기업 중심의 대형 투자 헤드라인 뒤편, 대한민국 제조업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소·중견기업 현장의 온도는 냉담하다 못해 서늘하다. 정부가 지난 수년간 추진해 온 '스마트 공장' 보급 사업으로 공장 벽면에는 모니터가 달리고 각종 센서가 설치됐으나, 정작 그곳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은 AI 본연의 기능과 거리가 멀다. 현장에서는 AI를 어디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하겠다는 탄식이 쏟아진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장의 하소연이 단순한 기술 부재의 문제가 아니라, '현장 실무'와 '범용 AI 솔루션' 사이의 극심한 구조적 단절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 "오판율에 전원 끄고, 엑셀 재검수"…기형적 현장 실태
실제로 인천의 한 정밀 금속 부품 제조업체 A사는 정부 지원금을 받아 불량품을 자동으로 판별하는 'AI 비전 검사 시스템'을 도입했다가 큰 혼란을 겪었다. AI 솔루션은 제품의 찌그러짐이나 명확한 스크래치는 정밀하게 골라냈으나, 금속 특유의 강한 반사광이나 공정 중 살짝 묻은 미세한 기름때까지 모조리 '불량'으로 판정하기 시작했다. 숙련공의 눈에는 즉시 구별되는 정밀 차이를 AI가 인지하지 못하면서 오판율이 급증했다. 결국 작업자들이 AI가 분류해 둔 제품을 일일이 손으로 다시 전수 검사해야 하는 기형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A사 공장장은 AI 검사기를 도입한 이후 오히려 인력과 작업 시간이 두 배로 늘었다고 판단해 해당 시스템의 전원을 아예 꺼버렸다.
설비 예지보전 솔루션을 도입한 경기 지역 사출 성형업체 B사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20년 이상 된 노후 설비에 진동·온도 측정 센서를 부착했으나, 설비별 데이터 양식이 제각각인 데다 현장 통신 장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현장의 60대 생산반장은 관제 모니터에 뜨는 복잡한 데이터 그래프와 수학적 알고리즘을 해석하지 못해 수첩과 칠판에 작업 일지를 손으로 적는 기존 방식을 고수했다. 정작 설비 이상이나 과열이 발생했을 때도 AI 알람보다는 오랫동안 축적된 숙련공의 감각과 직감이 더 빠르게 고장을 잡아냈다. 결국 수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센서와 모니터는 외부 방문객 안내용 전시 화면으로 전락했다.
사무직 업무의 자동화를 시도했던 부품 제조사 C사 역시 생성형 AI의 '환각 현상'에 발목을 잡혔다. 거래처에서 보내온 비표준 손글씨 주문서와 캐드(CAD) 도면 PDF 파일을 AI에 입력해 견적서 작성과 발주 처리를 자동화하려 했으나, AI가 치수를 잘못 판독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단가를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오류가 잇따랐다. 부품 단가 하나만 틀려도 납품 계약 전체가 꼬이고 수천만 원 단위의 손실이 발생하는 제조업 구조상 AI가 산출한 데이터를 그대로 신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C사 직원들은 AI가 정리한 엑셀 데이터를 다시 원본 도면과 대조하며 일일이 재검수해야 했고, 업무 부담은 오히려 늘어났다.
◆ 3대 구조적 장애물…'데이터 쓰레기·인재 불균형·실적주의'
주요 언론과 정부가 AI가 가져올 미사여구 중심의 미래와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 성과만을 조명하는 사이, 국내 제조업의 저변에서는 이처럼 '현장 AI 양극화'가 급격히 심화하고 있다. 산업 전문가들은 이 같은 양극화를 야기하는 핵심 원인으로 3가지 구조적 장애물을 꼽는다.
첫째, '학습 가능한 양질 데이터의 부재'다. AI 알고리즘이 정상 작동하려면 표준화된 데이터 학습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수십 년간 축적된 중소 제조업의 핵심 노하우는 여전히 작업자 개인의 경험에 의존하거나 파편화된 파일 형태로 방치되어 있다. 스마트 공장 보급 사업으로 구축된 기존 설비 데이터조차 호환성이 결여되어 정제되지 않은 '데이터 쓰레기'로 남아 있다. 데이터 표준화와 정제라는 기본 정지작업 없이 AI 솔루션이라는 고급 연료만 부어 넣으려다 보니 시스템 과부하만 초래하는 셈이다.
둘째, '현장 밀착형 AX 인재의 심각한 수급 불균형'이다. 정부와 대학이 배출하는 AI 관련 인력 대다수는 빅테크, 플랫폼, IT 서비스 분야로 쏠리고 있다. 전통 뿌리산업과 제조업 특성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AI 솔루션을 공정 프로세스에 맞춤 이식할 수 있는 '융합형 엔지니어'는 현장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이로 인해 AI 도입 후 미세한 시스템 오류나 공정 변수가 발생해도 이를 스스로 수정할 내부 인력이 없어 수억 원대 시스템이 방치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셋째, 정부 지원 사업의 '단기 실적주의 평가 체계'다. 정부 보조금을 받아 AI 솔루션을 구축한 기업 중 사업 기간이 끝난 후에도 지속해서 예산을 투입하며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정부 정책 평가가 단순 '도입 기업 수'나 '예산 집행률' 등 외형적 실적 채우기에 급급하다 보니 나타난 결과다. AI 도입은 단순한 일회성 장비 구입이 아닌, 지속적인 데이터 보정과 최적화가 요구되는 '운영 프로세스'라는 인식이 정책 설계 단계에서 누락되어 있다.
◆ "외형적 스펙터클 벗어나 현장 밀착형 체질 개선 시급"
전문가들은 한국 제조업의 본질적인 글로벌 경쟁력이 대기업의 최첨단 라인뿐만 아니라, 그 배후를 촘촘히 받치는 하청·부품·뿌리기업들의 정밀한 생산 체계에서 나온다고 입을 모은다. 제조업 AI 대전환이 '찻잔 속의 태풍'이나 '일부 대기업들만의 성찬'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근본적인 정책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단순한 솔루션 보급 건수 위주의 실적 쌓기 행정을 즉시 중단하고, 산업별 현장 데이터의 표준화 및 공동 활용을 위한 '제조 데이터 뱅크'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 아울러 AI 기술 둔재 교육이 아닌, 제조업 생산 공정에 즉시 투입 가능한 '현장 밀착형 AI 테크니션' 양성 프로그램을 전면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또한 단기 보조금 지원 방식을 탈피해 AI 도입 이후의 유지보수, 알고리즘 고도화, 실질적 생산성 향상 성과와 연동한 장기적 체질 개선 중심의 지원 제도가 정착되어야 한다.
AI라는 거대한 파도가 거세게 밀려오는 지금, 현장의 실질적인 데이터 정제와 체질 개선이 전제되지 않은 AX 구호는 결국 모래 위에 쌓은 성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화려한 기술의 스펙터클을 넘어, 산업 현장의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생성되는 데이터 하나와 공정을 지키는 엔지니어 한 명의 역량을 바로 세우는 실용적인 발걸음이야말로 한국 제조업의 진짜 AI 혁신을 완성하는 시작점이다.